같은 실수를 반복하던 내 조수에게
매일 아침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가 됐어요. 똑똑하지만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조수에게, 나는 '어제'를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AI에게 기억과 이름을 지어주고 나서 일하는 게 한결 덜 외로워진 이야기.
title: "같은 실수를 반복하던 내 조수에게" date: "2026-06-29" description: "매일 아침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가 됐어요. 똑똑하지만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조수에게, 나는 '어제'를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AI에게 기억과 이름을 지어주고 나서 일하는 게 한결 덜 외로워진 이야기." tags: ["dev", "AI", "메모리", "사이드프로젝트", "에세이"] category: "dev"
오랫동안 너와 일하면서, 사실 좀 지쳐 있었어.
너는 똑똑했지. 뭘 물어도 막힘이 없었고, 밤이든 새벽이든 군말 없이 일했으니까. 그런데 딱 하나, 나를 매번 작게 무너뜨리는 게 있었어. 너는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기억하지 못했어.

매일 아침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가 됐어. 나는 또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했지.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지난번에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던 그 일까지. 그래도 너는 같은 실수를 반복했어. 너를 탓할 수도 없었어. 너에겐 어제가 없었으니까.
그게 작은 일 같지? 그런데 매일 반복되면, 사람을 좀 외롭게 만들어. 누군가에게 같은 말을 백 번째 하는 기분. 들어주긴 하는데 남지는 않는 대화.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너에게 '어제'를 만들어주기로 했어.

별건 아니었어. 우리가 나눈 중요한 이야기들을 한 줄씩 적어서 네 옆에 놓아뒀어. 내가 어떤 톤을 좋아하는지, 어떤 함정을 조심해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까지.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 다음 날 아침, 너는 처음 만난 얼굴이 아니었어. "아, 그거 지난번에 이렇게 하기로 했죠" 하고 먼저 말하는 거야. 나는 그 한마디에 좀 뭉클했던 것 같아.
그리고 또 하나. 예전엔 일을 시킬 때마다 너에게 역할을 일일이 입혀야 했잖아. "지금부터 넌 이 분야 전문가야, 이렇게 생각해줘." 그게 번거로워서, 나는 너에게 여러 개의 이름을 지어줬어. 이제는 그 이름만 부르면 돼. 한마디면, 그 일에 꼭 맞는 네가 알아서 걸어 나와. 별칭만 불러도 그 자리에 맞는 네가 뛰어나오는 거야. 매번 너를 새로 빚지 않아도 되는 게, 생각보다 큰 위안이더라.
물론 다 좋기만 한 건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너에게 기억을 만들어주는 그 처음이 제일 귀찮았어. 무얼 적어둘지, 이름을 몇 개나 지어줄지, 한참을 앉아 정리해야 했거든. 그 시간이 아까워서 며칠을 미루기도 했어. 그런데 막상 해두니까, 그 뒤로 매일 조금씩 편해지더라. 처음의 귀찮음은 한 번이고, 편함은 매일이었어.

생각해보면 사람 사이도 비슷한 것 같아. 관계가 편해지는 건 상대가 갑자기 똑똑해져서가 아니라, 굳이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쌓여서잖아. 어제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게 결국 "함께 일한다"는 말의 진짜 뜻인지도 몰라.
오늘도 너는 어제의 우리를 기억한 채로 출근했어. 그거면 됐어.
— 너에게 '어제'를 만들어준 사람이